공지사항

[통일] 설립 20주년 맞은 북한인권시민연합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6-03-16 10:23:40
조회수 :
6152

▲ (왼쪽부터) 김영자 사무국장, 차미리 간사, 정다정 간사, 추유나 간사, 김소희 선임간사.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통일] 설립 20주년 맞은 북한인권시민연합

 

정치범 수용소에 아직도 12만명이… 북한 인권을 세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다       

 
 
 
주간조선 배용진 기자
 
 

    지난 3월 2일 ‘북한인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05년 17대 국회에서 당시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지 11년 만이다. 북한인권법은 재석 236명의 의원 중 212명이 찬성하고 24명이 기권하면서 가결됐다.
   
   북한인권법은 통일부 산하에 북한인권기록센터와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북한인권기록센터는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이 어떤지 실상을 조사해 기록하고 정보를 수집해 연구하고 보존하는 기구다. 남북 간에 인권과 관련한 대화를 추진하고 인도적 지원을 수행하는 등 북한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연구와 정책 개발을 수행하는 기관인 북한인권재단도 이 법에 따라 설립될 예정이다. 정부 예산을 들여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공개적으로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다.
   
   북한인권법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발의됐지만,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부딪혀 11년간 국회에 묶여 있었다. 법 조항의 문구와 설치 기구 등을 두고 여야의 대립이 반복된 결과이다. 18대 국회에서도 다시 발의돼 법제사법위원회까지 갔지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일부 의원들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켜 북한 정권을 자극하면 주민들의 생활이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반대하기도 했었다.
   
   북한인권법이 11년 만에 국회를 통과하는 데에는 시민단체들의 역할이 컸다. 북한인권시민연합과 올바른북한인권법을위한시민모임(올인모)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국회 앞에서 꾸준히 집회를 열어 북한인권법 통과를 촉구했다. 이 중에서도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윤현)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1996년 창립한 북한인권시민연합은 북한 인권 문제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론화한 단체다. UN 북한인권조사회(COI)와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설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올 5월 4일이면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윤현 이사장이 없었으면 출범하기 어려웠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설립 당시인 1996년은 북한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다. 1929년생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윤 이사장은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를 한국에 처음 들여온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1972년 박정희 정권 시절, 당시 목사이던 윤현은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를 창립했다. 이후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는 국내 유일의 인권단체로서 정치범과 양심수를 도왔다. 민주화 이후인 1996년 윤 이사장은 북한인권시민연합을 설립했다. 한국의 인권은 당시 이미 상당 수준에 올랐지만, 북한 인권은 그야말로 사각지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 이사장은 10년 뒤인 2006년 1월에는 아시아인권센터도 설립했다. 현재는 고령에 최근 낙상까지 겹쳐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윤 이사장과 함께 북한인권시민연합을 20년간 이끌어오고 있는 사람은 김영자 사무국장이다. 김 사무국장은 윤 이사장과 함께 1996년 당시 창립멤버로 참여해 지금까지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유신 독재하에서 인권활동가로 전면에 나선 윤 이사장이 북한인권연합의 정신적 지주라면, 김 사무국장은 실무를 담당하는 손발인 셈이다. 김 사무국장 역시 1970년대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사무차장을 지낸 것이 인연이 되어 윤 이사장과 함께 북한인권시민연합 설립에 참여했다. 현재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함께 아시아인권센터에서도 이사를 맡고 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20년 동안 북한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해 왔다. 북한인권법의 주요 활동은 UN과 세계 단체에 북한 인권 문제를 공론화해 북한 인권을 돕는 제도를 이끌어 내고, 북한 난민들을 구출해 은신처를 제공하고 모금활동을 하며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들을 정착하도록 돕는 일이다. 최근에는 탈북민에 대한 국내 인식 개선에도 주력하고 있다. 사무국장을 포함해 상근직 직원 8명이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특히 정치범수용소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를 알리는 데 주력해 왔다. 현재 북한에는 5 개의 정치범수용소에 12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갇힌 수감자들은 공정한 재판이나 형량에 대한 고지 등 기본적인 적법 절차도 받을 수 없다. 특히 북한은 연좌제를 적용해 본인은 물론 수감자의 가족, 어린아이까지 포함한 삼대(三代)에 걸친 친족들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많은 수감자가 강제노동과 고문, 열악한 식량 사정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다. 김영자 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국장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인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의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한이 정치범수용소의 규모를 더욱 축소하도록 정치범수용소 문제를 계속 공론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 (좌)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photo 이선민 / 김영자 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국장

   탈북민 긴급구호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주요 활동 중 하나가 ‘긴급구호’ 활동이다. 긴급구호는 북한을 탈출했지만 위험한 처지에 놓인 북한 주민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이들을 안전한 제3국으로 이송하는 활동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이 탈북민 긴급구호를 실제로 수행하는 사례를 보면 이렇다.
   
   지난해 12월 말, 북한인권시민연합에 “두만강을 넘은 탈북민 일가족 3명이 동북3성의 모 지역에 체류하고 있다. 당장 지원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영자 사무국장은 현지 조선족 브로커들과 접촉이 가능한 ‘수퍼맨’에게 연락했다. “제반 비용을 감당할 테니 일가족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가능한 빨리 그곳을 탈출하도록 도우라”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김 사무국장은 메일로 회원들에게 6명의 북한 난민 구출을 요청하는 긴급서신을 보냈다. ‘탈북민 한 명에 2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니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여러 곳에서 금전적 지원을 받은 김 사무국장은 ‘수퍼맨’에게 비용을 전달했다. 탈북민 일가족은 무사히 동남아시아의 모 국가에 도착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이런 방식으로 긴급구호한 탈북민은 지난해 한 해에만 112명에 달한다. 이 중 30명이 아동과 청소년이며 66명이 성인 여성이다. 올해 3월 8일까지 이미 31명을 구출했다. 지금까지 이 단체가 구한 총 인원은 650명에 달한다. 중국 공안의 감시가 강화돼 어려운 상황에 처한 탈북민이 갈수록 늘면서 구조가 필요한 인원도 늘어나는 추세다.
   
   북한 탈출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2012년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탈북하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국경 주변의 감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공안의 감시까지 강화되면서 중국의 동북3성 지역은 탈북민들에겐 통과하기 어려운 ‘마의 구간’이 되고 있다. 동북3성 지역에서 공안에 잡힌 탈북민들은 체포 즉시 북송되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탈북한 북한 주민은 말 그대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속하게 된다. 기본적인 숙식의 어려움은 물론 불법으로 국경을 넘었기 때문에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된다. 불과 며칠 전인 3월 초 북한인권시민연합의 도움을 받은 한 탈북 남성은 얼음이 낀 두만강을 맨몸으로 건너다 발에 심각한 동상이 걸렸다. 진물이 흐르는 발 때문에 이동이 늦어져 이 남성을 포함한 일행은 제3국에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상태다.
   
   특히 탈북민 중 여성의 비율이 70%에 달하는 만큼 인신매매 등 성범죄에도 쉽게 노출된다. 미리 탈북해 살다 브로커를 통해 딸 셋을 빼낸 한 어머니는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큰딸을 잃기도 했다. 브로커가 딸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김영자 사무국장은 “탈북 과정에서 북한 여성들이 인신매매의 표적이 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를 손놓고 보기만 한다면 현대판 위안부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국내 탈북민을 대상으로 교육사업도 진행한다. 경기도 연천에 있는 ‘한겨레 계절학교’가 대표적이다. 2001년 8월 처음 문을 연 이 학교는 14세 이상 20세 미만의 탈북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 현재까지 자원봉사자 270명이 참여해 660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난 1월 4일부터 20일까지 한겨레 계절학교를 다닌 16세 탈북청소년 A군의 사례를 보자.
   
   
▲ 지난해 8월 탈북 일가족 6명이 북한인권시민연합의 도움으로 라오스 메콩강을 통해 이동하고 있다. photo 북한인권시민연합

   한겨레 계절학교
   
   A군의 일과는 아침 7시 기상, 9시~오후 5시40분까지 수업, 저녁 7~10시까지 자율학습으로 이루어진다. 식사와 일부 특별활동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공부하는 시간이다. 7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교육훈련팀 담당 간사 3명이 선생님이다. 매일 오후 6시40분부터는 20분간 영어 단어 테스트도 한다. 처음에는 영단어 20개를 외우는 것이 목표이지만, 날마다 외운 단어가 누적돼 졸업 즈음에는 외운 단어가 수백 개에 달할 만큼 실력이 발전했다. 국어와 수학, 과학과 사회 등 다른 과목도 꾸준히 배운다. 특히 수학과 영어 등 탈북청소년이 일반적으로 취약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운다. 일반 학생들이 배우지 않는 ‘민주시민교육’이 여기서는 매일 70분씩 들어야 하는 필수과목이다. 민주화된 국가에서 성장하지 않아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연천 내 딸기농장이나 눈썰매장에서 현장체험학습을 한다.
   
   A군은 다른 탈북청소년 24명과 함께 1월 20일 학교를 졸업했다. A군은 “선생님들과 같이 24시간 생활하며 공부하니 짧은 기간이지만 공부 실력이 많이 오른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한겨레 계절학교가 학습에 도움이 됐다는 반응은 A군만이 아니다. 지난 1월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진행한 자체 설문에서 “한국 학생들과의 학습 차를 1~2년 사이에 따라가기 힘들다”는 대답은 전체 응답자의 33%를 차지했지만,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25%로 줄었다. “한국 아이들과 비슷하게 잘하고 있다”는 답변의 비율도 10%에서 15%로 5%포인트 상승했다. 차미리 북한인권시민연합 교육훈련팀 간사는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 불을 켜거나 복도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학생들의 학습 열의가 대단했다”고 했다. 한겨레 계절학교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는 연 2회(여름·겨울방학) 열렸고, 2013년부터는 매년 1월에 열리고 있다.
   
   
   예산 조달 어려워
   
   북한인권시민연합은 비영리 시민단체인만큼 예산 조달이 문제다. 특히 긴급구호에 필요한 금액은 일반 시민단체가 감당하기에 벅차다. 예를 들면 중국의 연길에서 동남아시아의 태국이나 라오스로 탈북민 한 명을 이동시키는 데 200만원가량의 비용이 든다. 장백에서 가는 길은 더 멀고 험해 1인당 340만원 정도가 든다. 이동 중 숙식 비용과 현지 브로커에게 제공하는 비용 등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지난해 긴급구호를 위해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지불한 금액은 2억5000만원을 넘는다.
   
   하지만 긴급구호에 필요한 비용은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중국 영토 내에 있는 탈북 주민들을 국가 예산을 들여 이동시킨다면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과도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예산에 있었던 ‘긴급구호’ 항목은 ‘국가가 예산을 들여 탈북민을 이송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2013년부터 삭제됐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대부분의 필요 예산을 모금으로 충당한다.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회비는 일반회원의 경우 월 2만원, 기업·단체회원 월 50만원이다. 학생회원의 경우 월 1만원이다.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회원은 300명, 비정기 후원금을 내는 인원까지 합치면 500명 안팎이 이 단체를 후원한다. 여러 시민단체나 재단법인도 북한인권시민연합을 돕는다. ‘사랑의 열매’를 만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등의 단체가 북한인권시민연합에 금전적인 도움을 준다. 지난해에는 한 일간지에 나간 기사를 보고 오스트리아 빈의 한인교회에서 600만원을 보내오기도 했다. 김영자 사무국장은 “매월 이름도 밝히지 않고 후원하는 분들도 있고, 긴급한 모금을 위해 자신이 받은 50만원의 월급을 쾌척한 인턴사원도 있었다”며 “이런 분들 덕분에 우리 단체가 20년 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설립 1996년 5월 4일
   이사장 윤현
   주요 활동 북한 인권상황 관련 자료수집 및 국내외 홍보
   정치범 강제노동 실태 국제기구에 고발·제소
   재외 탈북민의 생명 보호
   국내 거주 탈북민 지원 및 교육
   주요 수상 캐나다 존 디펜베이커 인권 자유수호자상(2011년)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제정 민주주의상(2003년)
   직원 상근직 8명(사무국장 및 교육훈련팀, 캠페인팀)
첨부파일#1 : nkhr.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