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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김일성의 평양, 우리가 살던 아오지… 北엔 두 나라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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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7-11-29 15: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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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평양, 우리가 살던 아오지… 北엔 두 나라가 있어요

 

‘脫北’ 박성진 연주가 - 김은주 작가, 대학서 ‘통통 콘서트’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29일(水)


 

 

 

 

‘칠갑산’ 불러 사형 선고 박성진  

“北에 가 南 음악 연주하고 싶어”  

‘꽃제비’ 출신… 책 펴낸 김은주  

“北서도 요즘엔 동무 대신 오빠” 


 

“북한에는 나라가 두 개 있습니다. 김일성이 태어난 평양, 그리고 제가 태어난 아오지 같은 지방이죠.”

 

함경북도 아오지에서 굶주림에 못 이겨 탈출한 작가 김은주(여·31) 씨가 입을 열자, 평양에 살다가 자유를 찾아 떠나온 소해금 연주자 박성진(46)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28일 서울 노원구 광운대에서 북한인권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통통 콘서트-남북 청년들 지금 통일을 만나다’에서 100여 명의 대학생에게 자신들의 탈북 과정을 생생히 전하며 통일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김 씨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집 없이 떠돌며 먹을 것을 찾던 ‘꽃제비’ 출신이다. 김 씨가 태어난 아오지는 김일성 부자의 ‘은덕’을 입었다며 은덕군으로 불리지만, 정작 고난의 행군 때 가장 많은 아사자가 발생한 지역이다. 김 씨는 열한 살 때 ‘이렇게 죽을 바에야 두만강을 건너다 총 맞아 죽자’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탈북했다. 프랑스인 기자와 함께 자신의 탈북 과정을 책 ‘열한 살의 유서’에 담아 출간하기도 했다. 

 

반면 박 씨는 평양에서 북송 재일교포의 아들로 유복하게 자라났다. 평양예술대학에 진학해 소해금 연주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중반 지인의 결혼식에서 한국 가요 ‘칠갑산’을 불렀다가 황해북도 태탄으로 쫓겨났다. 그때부터 남한 방송을 듣기 시작했고, 10년 뒤 탈북에 성공했다. 국내 유일의 소해금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 씨는 이날 ‘홀로 아리랑’을 연주해 공연장을 찾은 학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박 씨는 “통일이 되면 북한으로 돌아가 남한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두 사람은 북한 젊은이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박 씨가 “방직공장 여성 직원들과 옆 기계공장의 제대 군인들을 줄 세워서 한꺼번에 결혼시키기도 한다”고 하자 대학생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김 씨는 “과거에는 연애하는 것만으로도 생활총화에서 비판 대상이 되지만, 요즘은 연애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남자친구에게도 동무, 동지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한류의 영향으로 오빠, 자기라고 부른다더라”고 전했다. 이날 앞자리에서 이야기를 듣던 대학생 송민정(여·22) 씨는 “북한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돼 유익했다”고 말했다. 박성훈(22) 씨는 “소해금 연주가 감동적이었다”고 밝혔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112901073627328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