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NKHR

[인터뷰] ‘탈북 래퍼’ 강춘혁씨 첫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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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7-05-30 1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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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탈북 래퍼’ 강춘혁씨 첫 개인전

“이 얼굴이 바로 탈북민들의 서글픈 자화상”

주간조선 배용진  기자 max@chosun.com 

슬픈 표정을 한 남성의 얼굴이 하늘색 배경에 그려져 있다. 한쪽 눈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다른 한쪽 눈에는 북한을 상징하는 인공기가 눈동자 대신 담겨 있다. 그의 표정은 밝지 않다. 검은 후드티를 입은 그의 얼굴은 윤곽선이 찢겨져 나가는 모습이다. 금방이라도 부스러져 없어질 것처럼 보인다.  


   탈북민 출신 화가 강춘혁(31)씨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손꼽는 그림 ‘혼돈, 혼동’이다. 강씨가 스스로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그만의 자화상이 아니다. 그는 이 그림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모든 탈북민들의 자화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월 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갤러리에서 강씨를 만났다. 그는 ‘봄의 혁명’이라는 주제로 지난 3월 1일부터 6일까지 이 갤러리에서 첫 국내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친구들하고 치킨에 맥주를 먹으면서 축구를 보다 보면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저도 2002년 월드컵을 겪어 봤고 한국 축구 덕분에 가슴이 뜨거워졌던 적이 많아요. 하지만 남북 친선 축구를 할 때 북한 팀이 돌파하는 것을 보면 마음 한구석에는 찡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곤 했죠.”
   
   강씨는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1986년에 태어났다. 그는 13세 되던 1998년 부모를 따라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이후 3년간 중국에서 지내다 2001년 한국에 입국해 정착했다. 한국에서 중·고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후 서울 홍익대에서 회화과를 졸업했다.
   
   “우리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누리지 못하는 인권과 자유를 찾아 탈출한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탈북민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존재해요.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완전히 섞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죠. 그런 어려움을 알리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현재 정부가 공식 집계한 국내 탈북민은 약 3만명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꾸리고 있다. 강씨처럼 미술과 같은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탈북민은 흔치 않다. 강씨는 “내가 한국과 북한에서 겪은 경험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사람들한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씨가 이번 전시회에 낸 작품은 30여점이다. 해외 전시회나 합동전시회에 냈던 작품들을 모아 국내에서 첫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강씨는 독일 드레스덴, 영국 맨체스터와 같은 곳에서 5회 공동 전시회를 연 적이 있다. 이번 전시회는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박범진)을 비롯한 여러 단체의 후원으로 열렸다.
   
   북한에서 그림은 강씨의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틈나는 대로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종이가 부족하면 벽에 낙서를 했다. 그때 쌓은 내공 덕분에 강씨는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도 미대 입시 실기에 합격할 수 있었다. 중·고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한 후 미술학원을 찾아가 혼자 한 달 연습한 것이 대학 입시를 위해 준비한 전부였다. 그는 “평소 그림을 그릴 때 고집이 있는 편이었다”며 “시험 보기 한 달 전 만난 선생님 한 분이 입시를 위해 정물화를 준비하라고 알려주신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강씨가 ‘혼돈, 혼동’과 함께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는 작품은 ‘청춘혁명’이다. 강씨가 스스로의 두 손을 그린 이 그림 역시 자화상 격이다. 왼손에는 ‘for the freedom 19980309’라는 글이, 오른손에는 ‘spring revolution(봄의 혁명·春革)’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왼손에 그려진 글귀는 그가 자유를 찾아 탈북한 날짜를, 오른손에 그려진 글귀는 ‘춘혁’이라는 그의 이름을 뜻한다.
   
   
   독학으로 미대 진학
   
   강춘혁씨의 그림은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분류할 수 있다. 펜으로 날카롭게 스케치한 그림과 파스텔톤으로 부드럽게 그린 그림이다. 스타일이 워낙 달라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전시회를 열었냐고 묻는 방문객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는 이유에 대해 “그림의 주제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지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의 그림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 가지는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는 풍자성 그림이다. 북한의 체제를 풍자하고 고발하는 그림은 만화스럽게 스케치를 하는 편이다. ‘강성대국’ ‘허상’ 등의 그림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는 “그림의 주제가 무겁다 보니 가볍게 그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보는 사람 스스로가 메시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강씨 본인이 어릴 때 고향에서 겪었던 일들을 기억하는 회상형 그림이다. 어린아이가 혼자 산에서 자기 키보다 더 높게 쌓은 땔감을 지고 걷는 그림이 그 예다. 파스텔톤으로 부드럽게 그리는 편이다. 강씨는 “보는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고향에서의 아련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탈북한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그림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고 말했다.
   
   봄은 강씨에게 특별한 계절이다. 춘혁(春革)은 강씨가 북에 있을 때부터 쓰던 이름이다. 봄의 혁명이라는 뜻이다. 이름이 맺어준 덕분인지 그는 3월 9일 탈북해 봄에 첫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봄하고 인연이 많다”며 웃었다.
   
   강씨는 대중에 ‘탈북 래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2014년 케이블 TV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출연해 북한의 김정은과 리설주를 비난하는 랩으로 시청자들에게 알려졌다. 당시 출연해 만난 가수 양동근씨와는 지금까지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강씨는 “내가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과 음원으로 보여주는 것의 문제의식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북한의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그의 그림과 노래에는 닮은 구석이 많다. 그에게는 두 마리 토끼인 그림과 노래가 모두 놓칠 수 없는 직업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화가가 본업에 가깝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한 번쯤 북한의 상황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었으면 했어요. 물론 사상 최고 수준의 청년실업이 닥친 상황에서 북한 동포들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탈북민에 대해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민족이니까요.”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448100012&ctcd=C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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