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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북한 인권운동의 선구자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명예이사장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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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9-06-05 21: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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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운동의 선구자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명예이사장 타계

1970~80년대에는 앰네스티 한국지부 설립 등 민주화운동....1995년 이후 북한인권시민연합 설립, 북한인권문제 공론화 앞장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명예이사장이 타계했다. 향년91세.

고인은 1929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전남 순천이 고향, 어머니는 평북 태천 출신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외가와 어릴 적부터 외가와 가까웠다. 생전에 그의 말씨에서 평안도 억양이 배어 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 시절 젊은이들이 그랬듯 고인도 젊어서는 공산주의에 빠졌었다. 순천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담임선생의 영향과 추천으로 19세 때 남로당 후보당원이 됐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담임선생은 남파간첩이었다.
하지만 6.25를 겪으면서 공산주의의 실체를 경험한 후 공산주의와 결별, 기독교인이 됐다. 1962년에는 목사가 됐고, 이후 감리교 신학대 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김지하의 ‘오적(五賊)’ 필화 사건, 전태일 분신, ‘다리’지 필화 사건 등이 계기가 됐다. 1971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펜클럽 대회에서 국제 엠네스티 멤버였던 독일인 브라이덴쉬타인을 만난 것을 계기로 1972년 엠네스티 한국지부 창설에 앞장섰다. 이후 1985년까지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총장, 지부장(대표) 등을 지내면서 한국의 인권사정을 해외에 널리 알리고 300여명 가까운 양심수와 민주인사들을 도왔다. 이런 활동 때문에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고인이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9년부터였다. 북한 외교부 산하 외문(外文)출판사·대외 선전물을 외국어로 번역 출판하는 곳)의 스페인어 과장으로 일하다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갇혔던 베네수엘라인 알리 라메다의 수기를 읽고서였다. 
고인이 북한인권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인 1995년 이후부터였다. ‘한국사회에서는 민주화가 일단락 된 이상 이제는 북한인권운동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는 생각에서 고인은 '북한동포들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시민연합 (현 북한인권시민연합)을 창립했다. 이후 20여년간 북한인권시민연합은 강제수용소 등 북한인권문제를 국제사회에 제기하는데 노력,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설립과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신설 등의 성과를 거뒀다. 2006년에는 아시아인권센터(현 휴먼아시아)를 설립해 최근까지 이사장을 맡아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 2011년에는 캐나다 정부가 수여하는 '존 디펜베이커 인권상'을 수상했다. 

오늘날 북한인권문제가 이만큼 공론화된 데는 고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고인의 이력은 북한인권운동이 단순한 반공(反共)-반북(反北)운동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권운동이라는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인의 행적은 걸핏하면 민주화운동-인권운동 경력을 내세우고 그걸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북한인권문제는 외면하거나 오히려 훼방을 놓는 사이비민주화운동가들과는 대비된다. 고인의 장례는 6월 5일 북한인권운동단체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