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활동소식

[김영자의 구호노트] RESCUE : 조용하고 안전하게 "자유를 찾은 이들과의 만남"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20-07-29 13:41:32
조회수 :
57

Rescue: 조용하고 안전하게

자유를 찾은 이들과의 만남

 

 

북한인권시민연합은 1996년 창립 이래 북한난민 구호 사업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습니다. 갈 곳 없는 북한난민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동남아시아 등 제3국을 경유 한국에 입국할 수 있는 안전한 길로 이끌며, 중국에 숨어있는 북한난민에게 음식, 의약품, 옷가지 등을 제공하는 구호 활동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으로 강제송환 될 때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 여성, 어린이를 최우선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안전하게 구조해 2019년 12월 말까지 1,153명을 구출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1월과 2월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동이 불가해 여성 1명만을 구출했고, 안타깝게도 5개월간 한 명도 이동하지 못했습니다. 요즘 중국에서 이동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지만, 동남아 국가에서 제일 안전하다고 하는 곳에서 북한난민의 이동이 매우 어려워, 안전한 국가가 어디인지 다시 알아보고 있습니다. 중국의 어느 곳에서 20대의 탈북 여성은 남편의 폭력이 심해 한국으로 오려고 했으나 몇 달째 길이 막히자 희망을 잃고 죽음을 택한 가슴 아픈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상황이 좋아져 아까운 생명을 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간 후원자분들의 도움으로 자유를 찾은 분들이 시민연합 앞으로 감사 서신을 보내왔고, 저는 남쪽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탈북민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분들이 보내신 감사의 마음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늘 성원과 성금을 보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시민연합의 도움으로 자유를 찾은 분들의 감사 서신

저는 이O옥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도착한 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잘살고 있습니다. 

늦게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막상 자유로운 곳에서 살다 보니 내가 살고 있는 것이 그냥 꿈만 같습니다. 

가끔 중국에서 숨어 살던 때의 꿈을 꿉니다. 

신분이 없어 무시당하며 언제 잡혀갈지 모를 두려움 속에 항상 숨어 살던 때를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제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것이 정말 꿈만 같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신 우리 목사님과 인권단체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찌 지금의 제가 있었겠습니까? 

어렵고 힘들지만 힘내라고 응원해주시고 기도로 저희와 함께해주신 우리 목사님과 지원단체 선생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속절없이 팔려가 눈물과 두려움 속에 살던 저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의 삶을 살게 해주신 목사님 시민연합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게 주님을 알게 해주신 우리 목사님 항상 기도하며 신앙 속에서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4월 25일 

이O옥 올립니다. 

- 이O옥 씨는 1980년생으로, 황해도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돌아가셨습니다. 20대 초, 혜산의 청년 돌격대에 나가서 중국의 현실을 처음 들었습니다. 돌격대 일도 힘들고 밥도 안 줘서 남의 것 훔쳐 먹으며 정말 힘들게 버티다가 2004년 가을에 강을 건넜습니다. 그것이 속은 것이고 팔려서 산골 한족 가난한 노동자에게 시집가 아이를 둘 낳았습니다. 어려워도 아이들 때문에 살아보려 했는데, 남편이 여자와 바람났고 그 여자가 신고한다고 말이 돌아서 도망쳤습니다. 나는 조선에서도 중국에서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한국에 가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열심히 살아보고 싶습니다. 2018년 7월 중순 태국에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이O옥 감사 서신 

 

 

탈북민 가정 방문

5월 29일, 우리의 도움으로 자유를 찾은 분들의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10대의 딸과 아들과 함께 자유를 찾은 홍O희 가족은 그집 문안에 들어서자,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엄마인 홍 씨는 우리에게 점심 대접을 한다며 만두를 빚고 있었고, 저도 만두라면 먹는 것도 빚는 것도 좋아해 함께 만들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날은 금요일이어서, 딸은 학교에 가서 만날 수 없었지만, 하나원에서 공부는 물론 모든 것에 모범이 되어 하나원 퇴소 때 시민연합에서 모범생으로 선정된 학생입니다. 아들은 집 근처 일반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서두르지 말고, 모르는 것은 주위에 묻고 천천히 한 걸음씩 남한 사회를 알아가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만두는 다 만들어져 끓는 물에 만두를 넣고 잘 익은 만두를 먹는데 어찌나 맛나던지……. 제가 너무 맛나게 먹으니 홍 씨는 다음에 또 오시면 만두를 많이 만들어 놓겠다고 했습니다. 이 가족은 2019년 11월 말, 라오스를 거쳐 태국에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30대 후반의 리O재 씨도 만났습니다. 홍 씨와 같은 동네여서 근처 카페에서 만나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리 씨는 북에서 이미 한국 비디오나 음악 등을 보고 들을 수 있었고, 한국이 잘 사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 북 관리들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라는 것. 이런 것들을 젊은이들은 이미 알고 있고, 모이면 그런 말들을 한다고 합니다. 리 씨는 중국과 밀매를 하며 잘살게 되자 옆집에서 신고하여 보안성에 체포되어 전거리교화소와 강동교화소에서 5년간 복역했는데, 교화소에서의 생활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비참했다고 합니다. 특히 강동교화소 내에 있는 탄광에서 일할 때는 정말 끔찍했다고 합니다. 교화소를 나온 다음 한국에 올 계획을 세워 2019년 3월에 탈북했고, 이때 시민연합과 연계되어 2019년 4월 중순, 태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리O재 씨는 한국에 오길 정말 잘했다며, 내가 일한 만큼 돈도 벌 수 있고, 남의 눈치 안 보며 사는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하다고 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왔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5월 30일, 2002년 시민연합의 도움으로 자유를 찾은 난이! 남쪽에서 대학도 다니고, 결혼도 했고, 두 딸을 키우며, 자기 일도 열심히 하는 워킹맘입니다. 얼마 전 난이가 제집 근처로 이사와 모처럼 난이 집으로 가면서, 난이가 중국에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남쪽에 도착해 남한 생활에 적응하려고 뭐든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 북에 남은 가족을 도우려고 동분서주하던 모습 등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2008년 난이가 결혼할 때, 시민연합의 모든 임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난이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였고, 주례는 박범진 이사장님이, 부모로는 故 윤현 이사장님과 제가 역할을 했습니다. 식장의 반은 시민연합과 인연이 있는 분들로 채워졌지요. 난이가 이렇게 사랑을 받는 것은 그녀가 어린 나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왔을 뿐만 아니라, 감사할 줄도 알고, 남에게 베풀 줄도 알며, 정직하고 성실하기 때문입니다. 새집은 아주 잘 가꾸어진 아파트 단지였고, 이젠 북에서 온 친구들과 만나도 북쪽의 소식보다는 아이들 교육 걱정, 학원 걱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난이 가족과 점심 대접에 용돈도 받았습니다. 난이 가족이 늘 지금처럼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씀드립니다. 미국으로 박사 공부를 하러간 이성주 탈북청년이 득남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함께 기뻐해 주세요.

 

 

난이의 결혼식 모습 

 

나누어 쓰기 운동

시민연합의 이희정 회원께서 탈북민들과 나누고 싶다고 4박스의 옷과 가방 등을 보내오셨습니다. 이희정 회원님의 남편분이 손수 10층 사무실까지 옮겨주셨는데, 차 한 잔도 나누지 못해 아쉽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1999년 <탈북동포돕기 자원봉사자 수련회>에 참석, 그때부터 시민연합의 일원이 돼주셨고, 탈북민 정착에 도움을 주시려고 발로 뛰시는 박윤숙 교수께서도 옷과 신발 등을 보내주셨고, 꾸준히 보내주고 계십니다. 제가 힘들 때 늘 옆에서 격려를 해주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1999년, 제1회 북한 인권·난민 문제 국제회의로 인연이 된 조의환 자문위원은 그때부터 시민연합에 필요한 모든 디자인을 맡아주고 계십니다. 조용한 성품이시지만, 가슴은 청춘! 열정이 넘치시는 분으로 모든 활동에 적극적이십니다. 이번 故 윤현 이사장님 1주기 추모집도 표지부터 디자인, 편집 등을 도맡아 해주십니다. 고상하고 멋진 추모집이 탄생을 기대합니다. 이번에도 탈북민과 나누기 위해 옷가지 등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랫동안 시민연합 자원봉사자, 인턴, 그리고 컨설턴트로 활동한 유혜림 씨도 윤현 이사장님의 젓가락 정신을 잊지 않고 탈북민에게 도움 주는 나누기 운동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