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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 곳, 북한 ⑨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9-05-27 10:04:40
조회수 :
214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 곳, 북한 ⑨

 

 

친구의 도움

 

도 보위부로 호송되는 길에 도망쳐 삼일 동안 제대로 된 음식도 먹지 못하면서 동포라는 곳 까지 가게 되었는데, 동포에는 제 고아원 친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정말 죽을힘을 다해 친구 집까지 가니 친구가 저를 보고 “위력아 무슨 일이야?”하며 당황했습니다. 제가 고아원 다닐 때 정말 깔끔하게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 애가 이렇게 폐인이 되어서 나타나니까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도망쳤다고 말했습니다. 도망친 사람을 숨겨주면 처벌 받는데, 그럼에도 친구가 저를 집 안으로 들였습니다. 

 

친구가 밥을 주는데, 거짓말 보태지 않고 밥을 3kg정도 퍼먹었습니다. 물도 다 먹고, 그 집에 있는 김치도 다 먹고, 제가 배가 그렇게 큰지 처음 알았습니다. 배는 부른데 계속 들어갔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이불을 펴줘서 누웠는데, 그 길로 3일 동안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긴장이 풀리니까 식은땀이 나고, 대소변 다 보면서 잠만 잤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일어났는데, 친구한테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바로 나가려고 하니 친구가 밥을 싸 주겠다고 하는데, 제가 줄 것이 없어서 사양했습니다. 친구 집도 쌀이 넉넉하지 않은데 제가 너무 많이 축내고 가는 것 같아 미안해서 그냥 나왔습니다. 그런데 친구 집을 나와서 10km 정도 걸어가니 배가 고팠습니다. 걷는 것도 긴장이 풀리니까 힘들고, 배도 너무 고파 힘들었습니다. 목골 정도에서 걷는데 옆에 군부대가 보였습니다. 군부대에 들어가면 또 잡히는데 그걸 알면서도 너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참다가 막사로 들어갔습니다. 북한에서는 조직생활을 안하고, 막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밥을 주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그래도 그런 정은 있습니다. 밥을 먹고 다시 이틀을 또 잤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좀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꿈을 꾸다

 

그렇게 숨어다니 다가 2010년 두만강을 무사히 넘을 수 있었습니다. 제3국을 가쳐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한 3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중국에서는 브로커한테 인질로 잡혀서 고생도 했습니다. 태국에서는 난민수용소에 있었는데, 보위부 생활한지 1년도 안 돼서 그곳에 들어가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국에서 불법체류자라고 12일 동안 발에다 족쇄를 채우고 생활하는데, 저는 그 안에서도 너무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한국으로 가면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들떠있었습니다. 

 

그렇게 드디어 2010년 8월 20일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경찰이 되기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주민들은 경찰을 보면 피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어릴 때 어버지와 길을 함께 걸으면서 그런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경찰을 처음 목격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취객을 챙겨주는 모습과 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 뒤를 보호해주는 경찰을 보면서 저는 다시 잊었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통일이 되면 내가 보았던 대한민국의 경찰의 모습을 북한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