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자료

[증언]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 곳, 북한 ⑤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8-10-31 14:34:36
조회수 :
56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 곳, 북한 ⑤


 

 

힘든 일과를 마치고 나면, 밤에 애들끼리 모여 앉아서 엄마 이야기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7년을 살아남아 졸업 사진도 있습니다. 그 졸업사진을 보면, 제가 당시 1m 45cm로 제일 컸었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1m 25~35cm 였습니다. 그렇게 17살에 고아원에서 졸업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 꿈을 찾아서 대학교에 가거나 원하는 곳에 취직을 하는데, 북한에서 우리는 졸업해서 고아원을 나가면 어디 가서 잘 곳도 없고, 먹여주는 곳도 없었기에 그냥 고아원에서 보내주는 곳으로 갔습니다. 고아원에는 이제까지 당에서 키워주고, 먹여줬으니까 당을 위해서 일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돌격대에 나갔습니다. 제가 고아원에서 학교 회장, 청년비서를 해서, 고아원에서는 유일하게 평양에 있는 돌격대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고아원에서는 최초로 평양에 나간 사람이라서 ‘축하한다! 이위력! 고아원의 아들!’이라며, 다들 저를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평양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까. 정규 돌격대는 군 복무와 같이 10년을 근무해야합니다. 저는 828돌격대(팔이팔 돌격대)와 105돌격대(백공오돌격대)에서 일했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돌격대

 

828돌격대에 신병으로 저와 함께 들어간 사람들은 남녀 합쳐서 총 100명 정도였습니다. 제가 그 곳에서 9개월 정도 일하고, 다른 곳으로 탈출했는데, 그 당시 신병 대대 인원이 12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너무 힘든 곳이었습니다. 나름 고아원에서 힘들어도 잘 견디며 살아왔는데, 828돌격대에서는 참을 수가 없어서 들어가자마자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도망 못 간 이유는 고아원의 명예 때문이었습니다. 돌격대로 나갈 때 ‘영웅이 되어서 돌아오라’ 고 했었고, 책임감과 부담감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이렇게 생활하다가는 죽을 것 같았습니다.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저녁 12시까지 죽도록 일만 했습니다. 아침 7시 반에 나가서 8시에 현장에 도착합니다. 현장에서 공사하다가 점심을 먹는데, 점심은 국수를 먹습니다. 국수라는 것이 지금 여기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수가 아니라 라이타 돌 국수라고 하는 것을 먹습니다. 라이타를 보면, 마찰이 생길 때 불을 일으키는 돌멩이가 있습니다. 국수가 그것처럼 다 끊어져 있다고 해서 라이타 돌 국수하고 했습니다. 국수 면이 왜 그렇게 다 끊어 졌냐고 하면, 물에 오래 불려 양을 많아 보이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국수를 먹고 오줌 한 번 싸면 소화가 다 될 정도인데, 그렇게 배고픈 상태에서 또 강노동을 이어가니 정말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몸에 붙은 시멘트는 떨어지지 않아서 잡아 뜯어야만 떼어 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10개월 정도 있다가 더 이상 있으면 죽을 것 같아서, 828돌격대를 나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탈출해서 바로 도망쳤다가는 고아원에서 ‘왜 도망쳤어? 우리 명예를 더럽혔어’이런 소리를 들을까봐 무작정 탈출하지는 않고, 옆에 있는 려단으로 옮길 수 있도록 일처리를 해두었습니다. 평양 보통강 구역에 백공호 돌격대와 함경북도 려단이 하나 있었는데, 그 려단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백공오 돌격대로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솔직히 다시 돌격대로 가기 정말 싫었습니다. 고아원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는다는, 그런 명예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백공오 돌격대는 동원제 돌격대라서 828돌격대 보다는 상황이 조금 괜찮았습니다. 북한에는 지방 돌격대, 정규 돌격대, 동원제 돌격대, 이렇게 3가지 종류의 돌격대가 있습니다. 동원제 돌격대는 어릴 때 나가서 십년 만기를 채워야 제대할 수 있는 돌격대이고, 동원제 돌격대는 시기 마다 특정한 건설 등의 노동을 위해 동원되는 돌격대로, 정규 돌격대가 아니다 보니 규율이 조금 약한 편입니다. 

 

그나마 노동 강도와 규율이 약한 백공오 돌격대에서 3년간 일하면서 저는 제 나름대로 인생의 목표를 잡았습니다. 내가 여기서 무보수로 일하지만, 무엇인가를 얻어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무엇이 노동당 입당이었습니다. 입당을 하기 위해 3년간 정말 이 악물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3년 동안 매일 한 시간 일찍 아침에 일어나 만수대 언덕에 올라 청소를 했습니다. 이런 정성을 보여야 당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입당을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년 동안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청소해도 입당 소리가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치 지도원을 찾아갔습니다. 그 정치 지도원은 제가 열심히 하는 것을 알아봐주고, 항상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다독여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정치 지도원에게 내가 아버지, 어머니가 지은 죄를 씻고, 장군님께 충실한 일꾼이자 아들이 되겠다며 입당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정치 지도원이 저보고 ‘너는 입당을 할 수 없다.’며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