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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 곳, 북한 ③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8-05-21 10: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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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 곳, 북한 ③

 

 

증언자: 이위력

2010년 탈북, 2010년 한국 입국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원 과학수사학과 재학>

편집: 김소희 <캠페인팀 선임간사>

삽화: 안충국 <홍익대학교 미술학과 재학>

 

 

 

고아원에서

 

고아원에 7년을 있었는데, 그 동안 고정된 인원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삼백명에서 백명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절반은 도망치고, 절반은 굶어죽고 둘 중 하나 였습니다. 제가 고아원에 들어갔을 때는 거의 굶어 죽었습니다. 그때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친구를 사귀면 다음 날에 다 죽어버리니까... 저는 살아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하루하루 감사했습니다. 그때는 너무 먹을 것이 없다보니 송치가루를 먹었습니다. 송치가루는 옥수수대 심지를 갈아서 만든 것인데, 북한 당에서 벼 뿌리를 갈아서 송치가루와 함께 먹으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염소와 소도 그렇게 먹고 사는데, 사람이라고 못 먹을 이유가 없다면서, 이것으로 식량해결을 했습니다. 이런 말이 내려오니 아이들은 벼 뿌리를 캐서 거기에 낱알을 조금 섞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먹으니 소화가 안 돼서 대장에 차고, 배가 임산부처럼 부풀었습니다. 그러면 먹지 말아야 되는데, 배가 고프니 계속 먹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애들이 거의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아원에 중국라면과 월병 지원이 들어온 것입니다. 갑자기 기름기 있는 음식이 들어가자 고아원 아이들이 모두 설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많은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에 세 단계가 있는데, 영양실조가 걸린 다음에는 굉장히 많이 붓습니다. 살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손가락 전체가 들어갈 정도로. 부어서 눈도 안 보입니다. 그러다가 물이 쫙 빠지면서 죽습니다. 애들 중에 누가 붓는다 하면, 다들 걔 옆으로도 안갑니다. 그 때부터 파리, 송장 냄새가 나요. 사람 죽는 냄새... 벌써 애들이 나한테 가까이 안 온다는 것을 알면, 내가 죽는 다는 것을 알고, 엄마 찾으면서 계속 울었습니다. 그런 애들은 병동이라고 해서 따로 몰아넣는데, 우리끼리 송장조직이라고 놀리다가 놀리던 애들도 들어가고 그런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때는 하루에 열 명, 열두 명씩 죽어 나갔습니다. 다들 고아원 뒷 산에 묻었는데, 지금도 그 산에 묘지가 몇 백 줄은 있을 것입니다. 묘비는 따로 없고, 가마에다 싸서 덮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저는 고아원 생활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힘겨운 고아원 생활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겨울에 나무를 하러 갈 때였습니다. 고아원에서 나무를 하러가기 위해서는 거의 30리를 걸어서 가야 했습니다. 북한에는 산에 나무가 많지 않아서, 나무를 하러 간다고 하면 깊은 산골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고아원에서 나무를 하러 간다고 하면 아이들 모두 좋아했습니다. 이유가 힘들면서도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아원 주위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는데, 여길 벗어나면 자유주의라고 해서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못 나가게 했던 이유가 이런 거지 차림으로 시장에 나가서 외국인들을 만나 사진이라도 찍히면 장군님 망신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창 외국인들, 유엔 관계자들이 고아원 사진 찍고, 녹화도 많이 해가니까 방침 같은 것이 떨어졌었나 봅니다. 그래서 나무 하러 갈 때가 우리가 그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또 좋았던 것이, 나무를 하러 갈 때 아무리 힘들어도 이삭줍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줍기는 남들이 밭갈이 한 밭을 뒤져서 콩알, 옥수수 등과 같은 곡식을 몇 알씩 모아서 먹는 것을 말합니다. 이삭줍기가 고아원에서 주는 식량 외에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오후 수업 끝나고 나무하러 가면 저녁 7시쯤 되었습니다. 겨울에 온성 지역은 영하 30°정도 되고, 뜨거운 물을 밖에서 뿌리면 눈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추운 곳에서 저녁에 눈보라치는 길을 해치면서, 한국처럼 조명이 있는 길도 아닌 새까만 벼랑길을 나무 메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 3-4시간 걸어서 학교까지 도착하게 되면 온 몸이 땀과 얼음으로 뒤범벅이었습니다. 그래도 내 주머니에 이삭 몇 알이 있다는 것에 마냥 좋았습니다.(계속)

 

 

병동에서 죽는 다는 것을 느끼고 울고 있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