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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김부자의 건강연구소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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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7-11-17 10: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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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자의 건강연구소 ④



증언자: 김형수<만청산연구소 연구원>

2009년 탈북, 2009년 한국 입국 

편집: 김소희<캠페인팀 선임간사>

삽화: 강춘혁<탈북화가>

 

 

 

꽃을 넣어 빚은 술, 백화주

 

백화주는 이름 그대로 백 가지 꽃을 넣어 빚은 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딱히 백 가지의 꽃이라기보다 온 갖 꽃들이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백화주는 만드는 방법이 쉽지 않아 예로부터 큰 관료나 궁중에서만 빚을 수 있어 궁중 술로 불렸다. 북한에서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건강장수를 연구한다고 하는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만청산연구원이나 태평술공장, 용성특수식료공장에서도 일반 전통주는 물론 궁중 술로 불리는 백화주를 제대로 만들 수 없었다.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으로 옛 고서들 대부분이 불타버렸고 봉건유교사상을 뿌리 뽑는다는 구실로 그나마 남아 있던 옛 도서관들도 비공개로 사장시켜 버려 이 분야를 전공하던 역사학자나 전문가들조차 백화주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그러던 1991년 11월에 황해남도 해주시에 살고 있는 70대의 한 할머니가 큰항아리 5개에 든 백화주를 김정일의 생일 50돌을 맞으며 금수산의사당경리부에 선물로 보내왔다. 신상균 부장은 ‘이 항아리에 들어 있는 것이 백화주라는 것인데 황해남도 해주에 사는 한 할머니가 십여년 동안 전국각지를 돌면서 딴 백 가지 꽃으로 빚은 술’이라며 우리 연구실에서 김정일에게 올릴 수 있는지 분석해보라고 하였다. 뚜껑을 여니 향긋한 술 냄새가 확 넘쳐났다. 신상균 부장은 ‘이 할머니는 전쟁 때 당 비서였던 남편이 미군에 처형되어 지금껏 홀로 산다’며 ‘그의 충성심을 헤아려 잘 연구해 김정일 생일에 선물로 올릴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일의 입맛‧식습관 안 맞으면 폐기

 

이렇게 되어 만청산연구원 당위원회에서 백화주 연구에 관한 협의회가 열렸다. 협의회 결론에 따라 술의 미생물을 평가하고 주정과 중금속 물질에 대한 적성정량 분석을 진행한 결과 모든 지표들에서 김정일에게 올릴 정도의 ‘9호 제품’ 합격기준에 미달되었다. 이에 연구원들은 백화주를 김정일에게 올리기 위하여 백화주에 대한 연구를 계속 이어 갔지만, 문제는 김정일이 40도가 넘는 서양술에 길들여져 우리 선조들이 마시던 25도의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백화주의 주정을 김정일의 습관에 맞게 높이고자 하니 백여 종의 꽃에 들어 있는 중금속과 독성을 낮출 수 가 없었다. 

 

전국에 널려 있는 ‘9호 작업반’들을 동원해 자연에서 피어 난 백여 종의 꽃을 모으고 그 꽃잎을 걸러 주정이 높은 백화주를 몇 백번 넘게 빚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백여 종의 꽃들을 일일이 분석해 김정일의 입맛에 맞게 주정이 높은 백화주를 만들 수는 있었다. 그러자면 자연계에서 살아 있는 수천종의 꽃을 모두 검사해야 하고 토양에 따른 중금속의 양까지 전부 조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마디로 김정일의 입맛에 맞는 주정 높은 백화주는 만수무강연구소와 전국의 ‘9호 작업반’을 모두 동원한다고 해도 몇 십 년이 걸릴지, 몇 백 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1년여의 연구 끝에 만청산연구원 당위원회에서 백화주 연구를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연구조도 해산되고 말았다. 김정일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기막힌 맛의 백화주는 얼마든지 조상들의 본을 따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도 김정일이 요구하는 주정을 맞출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숱한 노력이 든 백화주는 빛을 보지 못했다.

인민들의 건강에 아무리 도움이 된다 해도 김일성 일가의 체질이나 식습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폐기해 버리는 곳이 만수무강연구소이다. 지금도 그곳의 머리 흰 연구원들이 김정은을 위해 묵묵히 일생을 바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가 막힌다. 오직 김일성 일가를 위하여 존재하는 만수무강연구소, 그 속에서 연구된 귀중한 자료들이 북한의 인민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끝)

 

 

김정일의 생일 50돌을 맞아 백화주가 담긴 다섯개의 큰 항아리를 선물로 보낸 해주의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