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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김부자의 건강연구소 - 2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7-07-31 10: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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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자의 건강연구소 2 

 


증언자: 김형수<만청산연구소 연구원>

2009년 탈북, 2009년 한국 입국

 

 

연구 설비

 

김영주와 김평일을 비롯해 쉽지 않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어렵게 후계자의 지위에 오른 김정일은 온통 김일성의 환심을 사기 위한데만 집중 되었다. 이에 김일성의 체질에 맞는 건강장수 비법을 연구하겠다는 것이었으며, 어떤 의미에서 후계자의 지위를 굳힌 김정일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연구이기도 했다. 이는 만청산연구원을 통해 현실화 되었으며, 만청산연구원은 김일성의 생일 75돌이 되던 1987년에 설립되었다.

 

1988년부터 1990년대 초에 미국과 독일, 일본, 스위스 등에서 수십 종의 연구 장비를 구입하였는데, 고가의 설비로 최소 2천 달러에서 최고 20여만 달러짜리 설비들이었다. 18백만불의 분광광도계와 2천여불의 오실로그라프로부터 2만여불의 무균조작대와 초고속원심분리기, 17만 달러의 자동생화학분석기 등 그 설비들은 값을 봐도 눈이 딱 감길 정도였다.

 

성분분석을 위한 장비들만해도 10만 불 전후의 고가설비들인 원자흡광분석기, 기체크로마토그래피, 폴라로그래피, 고성능액체크로마토그래피, 핵자기공명크로마토그래피, 겔크로마토그래피, 전자현미경, 플라즈마분광광도계, 무기질분석화로 등 종류와 보유 숫자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이러한 설비들의 만가동을 보장하기 위한 고성능 전압안정장치와 정전에 대비하여 24시간 전기보장시스템과 특대형 디젤발전기가 설치되었다.

 

만청산연구원에서는 고가의 설비를 설치하고 연구 인력들을 독일과 이태리, 스위스에 보내서 장비를 사용 할 수 있는 기술전수를 받도록 했다. 일부 설비들은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외국의 전문기술자들을 2달 정도 북한에 초청하여 담당연구사들이 해당 설비들에 대한 기술전수를 진행했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의 만수무강연구소들 중에서 만청산연구원은 최첨단 생물학분야의 기술을 김부자의 건강장수에 활용하는 연구기관으로서 인정받고 많은 연구 성과들을 거두게 되었다.

 

 

만병통치약 ‘631

 

김일성, 김정일의 만수무강을 위한 연구 중에서 631호라는 만병통치약 개발도 있었다. 만병통치약이란 어떤 병이든 다 치료할 수 있는 약이나 처방법의 용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생일 75돌을 맞으며 만병통치약이라는 것이 등장해 김정일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약물은 남포수산대학의 한 교수에 의해 개발되었다. 개발된 약물이 사람의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한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에서 관련 임상연구를 진행하도록 지시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는 곧 연구 조를 조직했다. 연구 조는 실험생물학과 생리학전공반 이익재 교수가 책임을 지고 김원주와 신태섭과 같이 뛰어난 전공생들로 꾸려졌다. 이 약물은 1986년에 알려졌는데 김정일은 김일성의 생일 75돌이 되는 1987년에 결과를 내놓으라고 독촉했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밖에 주어지지 않았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릴 형편이 못됐다. 임상실험은 1차적으로 평양에 있는 중앙동물원 동물학연구소 경제동물연구실에서 각종 실험동물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기막힌 것은 연구 조를 이끌고 있는 이익재 교수마저 약물의 성분과 조제방법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다. 연구 조에 속한 연구사들은 단순히 노동당 조직지도부 5과에서 지급하는 약물을 받아 여러 가지 실험만 진행해야 했다. 실험약물의 명칭은 노동당 중앙위에서 ‘631라고 지정해 주었다. 631호는 김일성의 생일 415일과 김정일의 생일 216을 합치면 631이 된다며 김일성 뿐 아니라 김정일의 만년장수에도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에서 지었다는 말이 있다.

 

힘들게 연구했지만 인간의 장기나 몸의 한 부분을 대신할 수 있는 기계적 수단은 만들 수 있어도 만병통치약은 존재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계속).

 

 

만병통치약을 개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구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