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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의 삶 - 7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7-03-21 11:06:32
조회수 :
2222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의 삶

 

 

 

남한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봄

 

한국 와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자유북한방송과 같은 많은 단체들에서 북한으로 삐라를 보낸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삐라에 중국 돈을 붙여서 보내주기도 한다. 나는 이 방법이 북한주민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람들도 삐라를 보고, 이를 볼 때면 속으로라도이런 게 있구나!’ 알게 되고 머리가 트이게 될 것이다.

 

북한에 있을 때는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는 아예 몰랐다. 북한에서는 한국을남조선이라고 했지 한국이라 하면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남조선에 가면 다 목을 잘라 죽인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강요와 설교를 당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북한주민도 남한에 대해 많이 안다. 겨울연가, 가요무대, 동반자와 같은 프로그램의 알판(씨디-롬 디스크)을 계속 듣고 있고, 겨울연가를 보고 붙잡혀간 아이들도 많다. 무산 지역에서는망해가는 21세기 빨리 망하라!”라는 슬로건도 나왔다. 이제 북한 주민들이 한국에 대한 환상도 가지고 있고, 북한을 반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말을 못한다.

 

나는 한국에서 세 번째 봄을 맞는다. 봄이 이렇게 예쁜지 몰랐다. 적십자에서도 나를 많이 도와주고 외로울까 봐 컴퓨터도 들여 줬다. 한국 사람들의 인사성을 보면서 내 자신도 많이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28년간 관리소 생활을 하며 웃어 볼 날이 없었다. 악의에 차 살았기 때문에 웃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살갑다. 버스 기사가 어서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상냥하게 인사한다.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 가방을 치면, 북한 같으면 때렸겠지만 여기서는 죄송합니다. 아주머니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병원에 가도 간호사들이나 의사들이 얼마나 상냥한지 모른다. 북한사회와 비교하지 못할 정도의 차이를 여기 와서 알았다. 북한에서 남조선은 병든 자본주의 사회라고 배웠고, 나도 그런 인식을 가지고 왔었지만, 인민들끼리 서로 돕는 것을 보며 자본주의가 더 좋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김혜숙씨가 직접그린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