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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의 삶 - 6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7-02-17 16:35:52
조회수 :
2841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의 삶

 

 

 

중국으로의 재탈출

 

나는 안전부에 있다가 노동단련대로 옮겨졌다. 10일 정도 단련대에 있다가 도망쳤는데,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 살았으니 길을 잘 알고 있었다. 대동강을 따라서 도망치다가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틀간 그 집에서 머물렀다. 지인은 자기 딸도 도망쳐야 할 사정이 있으니 함께 데리고 가 달라고 했다. 그래서 지인의 딸과 나는 무산으로 함께 가게 되었다.

 

오후 3시경, 나는 두만강을 넘었다. 경비대 교대 시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낮에 강을 건넜다. 무산에서 중국 측과 이미 연락을 한 상태였고, 살기 위해서는 중국인에게 팔려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중국 도문의 어느 한족에게 2,500원에 팔려가게 되었는데, 그는 53세 의사였다. 남편이 의사였기 때문에 도문 변방대원들이 집에 와서 자주 치료를 받곤 했고, 그래서 내가 북한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잡아가지 않았다. 일 년에 몇 번씩 공안들이 지역을 바꿔 단속하는데, 그때마다 공안들은 며칠 산으로 도망가 있으라고 알려줬고, 나는 숨어있다 나오곤 했다.

 

한족 남편은 아직까지도 내게 연락이 온다. 나에게 다시 중국으로 오라고 하지만, 북송 될 위험이 있기에 갈 생각이 없다.“한국 국적을 얻어서 12년 이상 살면 중국에서 북송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후에나 중국에 갈 수 있을까?

 

 

3국을 통한 한국 행

 

중국에 있을 때, 한국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중국에 남아 있던 한족 가족 모두를 데려간 여성을 보았다. 탈북자가 한국에 들어가면 집도 주고,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본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국으로 떠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중국에는 탈북자에게 한국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고 돈을 받는 브로커들이 있다. 한국행을 원하는 16명이 모여서 나도 장춘, 산동, 곤명을 통해 국경을 넘어가는 길을 안내 받았다. 라오스에서는 2시간 반을 산길을 따라 걷기도 하면서 위험하고 힘든 여정을 거쳐야 했다.

 

한 번은 라오스에서 우리 일행이 배 3척을 나눠 타고 새벽에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라오스 경찰 8명이 우리에게 총을 겨누는 것이었다. 배를 쏘겠다니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라오스 경찰을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 옆에서 무슨 감촉이 느껴졌다. 악어였다. 내 옆에는 한 아주머니가 타고 있었는데, 더우니까 손을 물에 담갔다가 악어에게 물려 가고 말았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라오스 사람들은 우리를 내려놓고 잽싸게 되돌아갔다. 이제부터는 우리 스스로 갈 길을 찾아야 했지만, 언어적 장벽에 부딪쳤다. 그래도 내 수중에는 한족 남편이 차비로 준 만원이 있었고, 이 돈으로 우리는 태국 경찰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 덕분에 방콕 이민국 수용소에 이틀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태국의 이민국 수용소는 보통 한 방에 540명씩 같이 생활한다고 들었지만 내가 갔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있었을 때는 자릿세라는 것을 내야 하는 것도 없었고, 자리가 없어서 서서 자거나 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민국 수용소에서는 한국으로 보낼 사람들을 20명씩 뽑았는데, 내 차례 때는 40명씩 뽑아서 나는 20일 만에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