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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의 삶 - 5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6-12-05 15:48:00
조회수 :
3727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의 삶

 

 

 

북한을 넘나들며

 

2003년도 아이들이 모두 죽고, 나는 병에 걸려서 청진에서 장사하면서 치료받으며 살았다. 병원에서 치료 받기는 너무 비싸서 개인 집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그렇지만, 하룻밤 누워있는 데에만 500, 약값 800, 치료비 500, 밥한 끼 500원을 매일 내야 했다. 그렇게 3개월을 치료받으니까 그 동안 모아뒀던 돈이 다 떨어졌다. 그 때 어떤 아주머니가 중국은 먹고 살기 좋다고 하면서 나보고 중국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가다가 죽건, 이렇게 앉아서 죽건 마찬가지니 일단 떠나보기로 결심했다.

무산에 도착하니 국경경비대원들이 두만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줬다. 강을 건너자, 조선족이 경비대에게 얼마인지 모르는 돈을 건네주는 것도 보았다. 그렇게 조선족에게 넘겨져서 연길에서 화룡에 있는 한 식당으로 보내졌다. 그곳에는 나와 함께 넘어왔던 24, 27살의 젊은 여자들도 있었는데, 곧 모두 어디론가 팔려갔고, 나는 43살로 나이가 많고 관리소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 몸이 상한 탓인지 가격흥정이 안 되어 팔려가지 않았다. 200711, 식당에서 일하다가 북한에 건너가서 돼지를 사오라고 해서 넘어갔다가 잡히고 말았다. 다행히 중국 땅이 아닌 북한 내에서 체포되어 호송되었기 때문에 보위부로 보내지지 않았고, 안전부에서 20일 동안 취조 받고 청진시 비법 월경자 도집결소로 보내졌다. 그 곳에는 3개월 정도 갇혀 있었다.

 

 

인육사건

 

안전부에 20일 붙잡혀 있는 동안 자식을 잡아먹은 여자 둘을 봤다. 한 여자는 서른아홉이었고, 아홉 살 난 딸이 있었다고 했다. 거기서 나와 하룻밤 자고, 그 여자는 살인자니까 교화소로 보내려는지 죽이려는지 어디로 끌고 갔다. 나도 내 새끼 잡아먹을 생각은 차마 못했다고 말했더니,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아파서 산에 올라가 나물도 못 캘 정도가 되어 굶었다. 딸이 병에 걸리고 열이 나서 아파서 울었는데 도저히 나도 더는 못 참겠더라. 나도 너무 굶었더니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고기를 실컷 먹어보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돼지고기보다 사람 고기가 맛있다고들 하니, 어차피 이렇게 앉아서 모두 굶어 죽을 바에는 애를 잡아서 먹고 나도 죽겠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가 하는 말이 아이가 얼마나 어렸으면 가마에 쏙 들어갔는데 엉덩이가 제일 빨리 익었다고 했다. 그걸 잘라서 소금을 찍어 먹고 있다가 들어온 인민반장에게 들켜 붙잡혔다고 했다.

다른 여자는 내가 아는 여자였다. 여자의 남편은 탄광사고로 죽고, 아이를 데리고 살았는데 16살이었다고 한다. 여자가 강냉이 2kg을 간신히 마련해놓고 잠시 밖을 다녀왔는데, 그 사이 아들이 강냉이를 모두 먹어 치우자 너무 화가 나 아이를 그만 죽여버렸고, 돼지고기로 속여 강냉이로 바꾸어 먹었다는 기막힌 사연이었다. 아이의 어머니는내가 오죽하면 제 새끼를 잡아먹겠는가? 내가 곁에 있어도 애가 그 모양이었는데, 내가 죽고 없으면 애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나 있었겠나? 그럴 바에 내가 애를 실컷 먹고, 나도 죽어버리는 게 낫지!” 라고 말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그저 한 번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 살인자니까 총살했을 것이다.

최근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많이 오는데, 다른 마을에도 이렇게 인육을 먹는 사례들이 많다고 들었다. 김정은이 배급을 안주니까 아이를 밤길에 내놓지 말라는 얘기도 나온다. 도로에 나가면 널려 있는 시체들도 많고, 시체처리반도 흔히 볼 수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