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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지상낙원 탈출기 ⑦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20-09-16 13:50:17
조회수 :
284

지상낙원 탈출기 ⑦ 

 

 증언자: 이태경

2007년 탈북, 2009년 한국 입국 

<북송피해자가족협회 회장>

삽화: 안충국 <홍익대학교 미술학과 재학> 

 


북한 정부, 일본 정부, 일본 적십자, 조총련, 한국 정부의 역사적 소용돌이 안에서 북한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북송 재일교포들. 이태경님도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태어나 북한으로 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조총련이 그렇게 설파했던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은 자유 하나 없는 곳이었고, 한 평생 탈북하기 위해 기회를 엿봤다는 이태경님. 탈북에 성공해 현재는 한국에서 북송피해가족협회 회장으로 북송 재일교포들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따뜻한 조선족 청년

 

심양으로 가면 영사관도 있고 한국 직행 비행기도 있으니 그쪽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민박주인의 말에 더 알아볼 시간도 없이 결심하고 심양버스를 탔습니다. 14시간 내내 버스를 타고 가면서 순간의 긴장을 풀지 못하고 줄 곳 다음 계획을 세웠습니다. 먼저 민박집 주인이 가르쳐 준 대로 조선족 민박집을 찾았습니다. 저녁에 40대 후반의 집주인과 술을 한잔하며 나의 탈북과정과 한국의 친척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하며 브로커를 찾아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일본이 고향이며 한국에는 아버지 형제들이 계시는데 보수는 넉넉히 드리겠노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때 나의 마음은 허풍이 아니라 진심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국에 계시는 사촌 형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다음 날로 북경 브로커가 나를 놓치지 말고 꼭 자기에게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큰 함정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스니다. 브로커가 나를 인질로 잡고 돈을 요구하려는 술책이었습니다.

 

민박집에서 김성국이라는 조선족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는 길주에 친척이 있어 북한에 갔던 적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학생들의 농촌 동원 모습을 보고 놀랐다는 것과 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북한의 참혹한 현실에 대한 동정과 김정일 체제에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북한을 버리고 탈북한 나를 이해해 주는 그와 더욱 친숙해졌습니다. 브로커가 한국으로 보내주는데 한 명당 1,000달러를 요구한다는 말을 하자 그는 즉석에서 브로커비 1,000달러를 빌려주었습니다. 한 명의 브로커비 밖에 없으니 아들은 성국의 지인에게 맡기고 6개월 후에 꼭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와 나는 북경으로 떠났습니다. 다행히 아들과는 3년이 지난 후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 안창수요. 먼저 식사부터 합시다.” 목이 딱 붙은 작은 키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얼굴을 손수건으로 내리 쓸면서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단번에 허풍의 미적지근한 바람이 풍겼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1,000달러의 브로커비를 넘겨주었습니다. “안 선생님. 만약 우리 형님이 잘못된다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게 알고 가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나를 위해 성국이가 남긴 마지막 동정의 말이었습니다. 피를 말리는 탈북 전 과정에 인간의 따뜻한 숨결을 느끼게 했던 조선 청년이었습니다.

 

 

브로커와의 동행

 

김성국은 브로커 안창수에게 1,000달러를 주고 안전 입국을 약속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날 저녁 안창수는 싱글 침대 하나밖에 들어갈 수 없는 작고 초라한 방을 안전지대라며 나를 안심시키고 돌아갔습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운명이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창수라는 브로커의 것이었으며, 그에 의해 생사가 판가름 되는 갑을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브로커는 돈이 필요하고, 저는 안전한 탈북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처제가 탈북 여성이어서 탈북 상황과 루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안 선생님. 난 언제쯤이면 가게 됩니까?” “이씨. 지금 중국 남방은 우수기여서 이동이 곤란합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는 한국에 있는 나의 친척에게서 돈을 받지 않고는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밤중에 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에게 급한 일이란 공안에게 잡혀 가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며 문을 열었습니다. “한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빨리 가오” 사촌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말에 희망으로 펄쩍 놀랐습니다. 이러고 있는 나보다 안창수는 더 흥분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보세요? 저 이태경입니다. 예, 할아버지는 이용택, 할머니는 김탄실, 우리 형이 둘, 누님이 둘입니다. 이름은 - - -아들하고 같이 중국에 왔고, 탈북하는데 돈이 필요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손은 물론 다리까지 떨고 있었습니다. 행운의 순간이었습니다. 사촌 형이라는 전화 속 주인공은 모든 것을 확인하고서야 말을 이었습니다. “돈을 보내겠는가 하는 것은 내일 상의하고 전화할게. 뚜---뚜---”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의 기분에 아랑곳없이 안창수는 기분이 들떠 있었습니다. 다음날에 사촌 형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나도 농사를 짓는데 그만한 돈이 없다. 보내주지 못하겠다.” 물먹은 담 벽이 우르르 무너지는 듯이 다리맥이 천길 나락 속으로 빠졌습니다. “조금이라도 보내주실 수 없습니까? 빌렸던 돈은 한국에 가면 꼭 갚겠습니다. 정착금을 모아도 갚을 돈은 된다고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지금 나도 보낼 조건이 되지 않아서... 뚜----”(계속)

 

 

드디어 만난 브로커와 동행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