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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지상낙원 탈출기 ⑤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20-03-25 11: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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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낙원 탈출기 ⑤ 

 

증언자: 이태경

2007년 탈북, 2009년 한국 입국 

<북송피해자가족협회 회장>

삽화: 안충국 <홍익대학교 미술학과 재학> 

 

 

북한 정부, 일본 정부, 일본 적십자, 조총련, 한국 정부의 역사적 소용돌이 안에서 북한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북송 재일교포들. 이태경님도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태어나 북한으로 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조총련이 그렇게 설파했던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은 자유 하나 없는 곳이었고, 한 평생 탈북하기 위해 기회를 엿봤다는 이태경님. 탈북에 성공해 현재는 한국에서 북송피해가족협회 회장으로 북송 재일교포들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우선 안전한 이곳에서 옷을 말리고 떠나자. 오늘 밤부터는 행군이다.” 아들은 길고 단단한 나뭇가지를 꺾어 손잡이 쪽이 뾰족한 지팡이를 만들었습니다. “이쪽은 왜 이렇게 뾰족하게 했니, 넘어지면 위험할 텐데”라고 물으니 아들이 히죽 웃으면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건 힘들 땐 지팡이로 쓰고, 누가 잡으러 달려들면 찌르는 창으로 쓰려고요.” 아들은 17살의 어린 나이에도 생사를 각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탈북은 목숨을 건 탈출이었습니다. 

 

군대에서 어지간히 지도 보는 법을 배웠던 나는 김일성의 혁명 활동 지도를 통해 약 150~200km 행군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인적을 피해 캄캄한 밤에만 행군한다면 안전하게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보다 더 위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각기 배낭과 가방을 메고 행군의 첫발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나침반을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냥 운명에 맡기고 골짜기로 내려오는데 오솔길이 나타났습니다. 오솔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가 날이 어두워서야 빵 두 개와 분유를 물에 타 마시고 쉴 사이 없이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개 짖는 소리와 사람소리에 깜짝 놀라 덤불 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땅땅땅” 고요한 산속에서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당장에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아 주저앉았습니다. 다시 일어나 보려고 했으나 이미 긴장에 다리는 맥이 쑥 빠져 문어 다리와 같았습니다. “안 되겠어, 하룻밤을 여기 있다가 내일 아침 일찍 떠나자” 배낭에서 비닐하우스를 꺼내 덮고 아침까지 기다렸습니다. 

 

아침이 무작정 북서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산꼭대기 펑퍼짐한 고원에 감자 밭이 나타나 웬일인가 싶어 살펴보는데 말 같은 청년이 껑충 튀어 나오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농사짓던 사람들 7명이 몰려 왔습니다. “뛰자!” 다시 잡초가 무성한 풀숲을 헤치며 달렸습니다. 저만치 숲을 지나 산 아래로 미끄럼을 타듯이 내려가고 산 두 개를 단숨에 넘었습니다. 어지간히 왔는가 싶었는데 저 멀리 산 아래로 구불구불한 강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강 저쪽에 집이 몇 채 있었습니다. “우리가 찾던 강이 나타났어!” 예상했던 대로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저긴 조선이 아닌가요? 저기 보세요. 민둥산에 저집...”. 그제서야 강으로 내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 한 점 없는 건너편 민둥산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이쪽은 산림이 앞을 막는데, 강 건너 저쪽은 벌거벗은 산에 붉게 물든 뙤기 밭이 비루먹은 강아지 잔등처럼 나타났습니다. 순간 후줄근한 어묵에서 꼬챙이를 빼듯이 다리 맥이 쑥 빠졌습니다. 하마터면 탈북이 아니라 입북할 뻔한 것입니다. 

 

반대 방향으로 다시 행군하고 있는데 자동차 소리가 들렸습니다. 일단 날이 너무 밝아서 산 속에서 숙영하기로 하고 누웠습니다. 후에 왜 도강하여 바로 중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가 물어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압록강 중국 연선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초기에는 같은 민족의 굶주림과 김정일 독재를 저주하며 탈북해 온 사람들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갈 때에는 탈북자들이 당나귀와 돈을 훔치고 살인까지 했다는 소문이 돌아 탈북자를 보면 신고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내륙의 교회를 찾아 들어가기로 하고 야간에만 행군했습니다.

 

9월 말 중국 동북은 선선하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차가운 쌀쌀한 바람이 골짜기를 따라 낙엽과 함께 불어왔습니다. “철이야, 이젠 가자, 힘드니?” 나는 아들에게 남아있는 정신력과 체력을 타진하며 물었습니다. 다시 빵 두 쪽으로 행군의 에너지를 보충했습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길 위로 올라서자 산속 행군에 비해 걸음 속도가 한결 빨라졌습니다. 우리는 하루 10시간을 잠시도 쉼 없이 계속 걸었습니다(계속). 

 

 

무작정 걸음을 재촉하는 이태경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