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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지상낙원 탈출기 ③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9-11-20 09: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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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낙원 탈출기 ③ 

 

 

                                       증언자: 이태경

                                              2007년 탈북, 2009년 한국 입국 

                                              <북송피해자가족협회 회장>

           삽화: 안충국 <홍익대학교 미술학과 재학>

 

 

북한 정부, 일본 정부, 일본 적십자, 조총련, 한국 정부의 역사적 소용돌이 안에서 북한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북송 재일교포들. 이태경님도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태어나 북한으로 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조총련이 그렇게 설파했던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은 자유 하나 없는 곳이었고, 한 평생 탈북하기 위해 기회를 엿봤다는 이태경님. 탈북에 성공해 현재는 한국에서 북송피해가족협회 회장으로 북송 재일교포들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일본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며

 

저도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을 겪었습니다. 정말 별난 거 다 겪었습니다. 대동군에서 한 10년 살고, 다음에는 황해도에서 한 10년 살다가 군대나갔습니다. 그래도 저는 북송재일교포 중에서는 성분이 나쁜 축이 아니었습니다. 북송재일교포들은 대부분 성분이 낮지만, 다 같은 성분이 아닙니다. 북한에서는 주민들을 3계층 51개로 분류해 성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중 최하등급은 동요계층, 적대계층이라고 해서 월남자 가족, 남조선으로 간 사람들 가족들이 포함됩니다. 우리 가족은 피살자 가족으로 삼촌이 남조선에서 빨치산 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성분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웃긴 것이 여기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삼촌이 현충원에 계시는데, 빨치산과 교전하다가 사살됐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저희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 계셨지만, 일부러 반대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북한에서 들키지 않고 군대도 가고, 대학에도 갈 수 있었습니다. 원래 북송재일교포들은 군대에 나가는 것이 금지되어있었지만, 저희 세대부터 군대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북한에서 병원장까지 하며 삶을 이어갔지만, 일본에서 북송선 타고 북한에 도착한 그 날부터 저는 불만이 가득하고,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저는 비록 어린 나이에 북한에 갔지만 일본에서 자유롭던 생활을 평생 동경했습니다. 일본에서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자유를 누리고 자본주의를 경험했으니 북한에서 아무리 김일성주의나 혁명사를 세뇌시켜도 그게 들어오겠어요? 그럴수록 일본에서 좋았던 것들만 뚜렷하게 기억할 뿐이었습니다. 

 

 

탈북을 결심하다

 

제가 한 평생 자유를 갈망하다 보니 자유의 귀중함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처지가 비슷한 북송재일교포 친구의 탈북도 제가 많이 도와줬습니다. 그 친구는 너무 슬프게도 1982년도에 잡혀 생사를 모릅니다. 사실 많은 북송재일교포들이 초반에 북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탈북을 시도했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저는 계속 기회를 엿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난의 항군 때가 되면서 대량탈북이 이어지자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황해북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황해북도에서 탈북을 결심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 대부분이 국경연선 지역에서 사시는 분들입니다. 혜산, 무산, 양강도, 청진 등. 황해북도는 평양을 지나 아래 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탈북하다 잡힌 사람들도 지역에 따라서 경중의 무게가 다릅니다. 북쪽에서는 잠깐 세수하러 갔다고, 잠깐 돈벌러 갔다고 변명을 할 수가 있는데, 아래쪽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 그게 안 됩니다. 일단 국경연선으로 갔다는 것 부터가 탈북하기위해 엄청난 결심을 하고 갔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어떻게 생각해야되냐면, 여기처럼 서울과 부산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북한은 전화도 잘 안 되고, 여기처럼 고속도로도 없고, 이동도 잘 못합니다. 황해도에서 혜산에 가려면 일주일을 가야 합니다. 가는 중에 먹을 밥까지 다 싸서. 그러니까 황해도에서는 국경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었습니다. 제가 지금 탈북자가 많고, 국경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던 것은 라디오 방송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황해도에 살면서 외부세계에 대해 알 기 위해 라디오를 수소문해서 구했습니다. 그 후부터 방송을 계속 들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을 많이 들었습니다. 방송을 들어보니 지금 탈북행렬이 줄을 이루고, 교회를 통해서 탈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해서 가야되겠다는 생각 뿐 정확한 계획도 없이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제가 55살이었을 때입니다. ‘이제 안 가면 나는 영영 자유를 못 본다. 죽든 살든, 이제 나는 죽어서도 아깝지 않은 나이다.’ 라는 죽을 각오로 왔습니다. 한국에 지금 북한이탈주민들이 3만명 넘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3만 명 모두 탈북 이유야 다르겠지만, 죽을 각오로 왔다는 것은 공통입니다. 저는 탈북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자유희망!(계속). 

 

 

자유를 갈망하는 북송 재일교포들